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莊子(1) 장자(1) ●

범례 해제 참고서목

第 1 篇 逍遙遊 第 5 章
12

 전체서명/저자명기사제목원문/대역문번역문역주기타 惠子謂莊子曰
吾有大樹호니 人이 謂之
(注 1)

[역주 1]樗(저)
가죽나무. 成玄英은 “樗는 북나무, 옻나무 종류이다.
나무의 냄새를 맡으면 몹시 악취가 나는
惡木이다[樗栲漆之類 嗅之甚臭 惡木者也].”라고
풀이했다. 재목으로 쓸모가 없는 나무라는 뜻이다.
라하더니 其
(注 2)
大本
[역주 2]大本
큰 줄기. 本은 뿌리라는 뜻이지만 林希逸이 “大本은
나무의 몸체이다[大本은 樹之身也].”라고 풀이한
것처럼 줄기로 보는 것이 맥락상 적절하다.

(注 3)
擁腫
[역주 3]擁腫
나무에 울퉁불퉁한 혹이 많은 것. 擁(옹)은 癕의 借字.
奚侗은 “擁자는 마땅히 癕으로 되어야 한다[擁當作
癕].”고 하고 있다. 그러나 글자를 고치지 않고도
울퉁불퉁하게 혹이 많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경우를
〈庚桑楚〉편에서 老子의 道를 두루 다 체득한
庚桑楚라는 사람이 몸에 혹 투성이의 험상궂은 사람과
함께 산다는 뜻으로 ‘擁腫之與居’라 한 데서 찾을 수
있다.
하야 而
(注 4)
不中繩墨
[역주 4]不中繩墨
승묵에 맞지 않음. 먹줄을 칠 수 없다는 뜻. 繩墨은
직선을 긋기 위한 먹줄.
하고 其小枝는
(注 5)
卷曲
[역주 5]卷曲
비비 꼬이고 구부러짐. 成玄英은 ‘똑바르지
않음[不端直也]’이라고 풀이했고, 육덕명은 “卷을
拳으로 쓰고 있는 판본도 있다[本又作拳].”고 하였다.
하야 而
(注 6)
不中規矩
[역주 6]不中規矩
規矩에 맞지 않음. 規는 圓을 만드는 도구, 矩는
네모꼴을 만드는 도구. 동그라미나 네모꼴을 그릴
수가 없다는 뜻.

(注 7)
立之塗
[역주 7]立之塗
길 옆에 서 있음. 朴世堂은 “이 나무가 길 옆에
가까이 서 있다[近於道傍也].”고 풀이했다.
호대 匠者不顧하나니 今子之言이 大而無用이라
(注 8)
衆所同去也
[역주 8]衆所同去也
모두 똑같이 이 나무를 보지 않고 떠나가 버림.
朴世堂은 去를 棄로 풀이했다. 앞의 大瓠와 여기서의
樗木을 두고 실용적 쓸모가 없다고 惠施가 비판한
것은 世俗을 초월한 莊子의 大言이 쓸모없음을
비판하기 위한 것이다. 이 비판에 대해 莊子는
‘쓸모없음의 큰 쓸모[無用之用]’로 답한다.
로다

혜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.

“나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고 말한다. 그런데


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直線을 그릴 수가 없고 그 잔가지는 비비
꼬이고 구부러져 동그라미나 네모꼴을 그릴 수가 없다. 그래서 이 나무가
길 옆에 서 있기는 하지만 목수가 쳐다보지도 않는다. 지금 그대의 말이
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는지라 뭇사람들이 모두 버리고 떠나 버리는
것이다.”

莊子曰
(注 9)
子獨不見狸狌乎
[역주 9]子獨不見狸狌乎
그대만이 홀로 살쾡이를 보지 못하였는가.
狸狌(이성)을 너구리[狸]와 살쾡이[狌]의 둘로 나누어
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, 여기서는 成玄英이 狸狌을
野猫라고 풀이한 견해를 따라 二字一語로 보고
살쾡이로 번역하였다.
아 卑身而伏하야 以
(注 10)
候敖者
[역주 10]候敖者
나와 노는 작은 짐승들을 노림. 候는 朴世堂이
‘엿보다[候伺也]’로 풀이한 견해를 따랐다. 敖者는
《說文解字》에서 游로 풀이한 것에 의거하여, 나와
노는 짐승들로 해석하였다. 司馬彪는 “나와 노는
짐승들을 노렸다가 잡아먹음을 말함이니 닭이나 쥐의
무리이다[謂伺遨翔之物而食之 雞鼠之屬也].”라고
풀이했다.
하야
(注 11)
東西跳梁
[역주 11]東西跳梁
역시 먹이를 찾아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뜀.
하야
(注 12)
不辟高下
[역주 12]不辟(피)高下
높고 낮은 데를 피하지 않음. 곧 높은 곳 낮은 곳을
가리지 않고 날뛴다는 뜻. 辟는 避와 같다.
하다가
(注 13)
中於機辟
[역주 13]中於機辟(벽)
機辟에 걸림. 中은 맞다, 걸리다의 뜻. 機辟은 덫.
王念孫은 辟을 繴(벽: 덫이 설치되어 있는 그물)의
뜻으로 풀이했고, 郭慶藩도 繴의 假借字로 보았다.
司馬彪는 機辟을 그물[罔]로 풀이했고, 成玄英은
‘機關之類’로 풀이했다.
하며 死於
(注 14)
罔罟
[역주 14]罔罟
그물. 罔은 網과 같다. 罟도 역시 그물. 二字一語.
하나니라 今夫
(注 15)
斄牛
[역주 15]斄(리)牛
털이 검고 꼬리가 긴 소. 티벳 高原産의 소의
일종이라 한다(池田知久). 斄를 來(래)로 읽는 說도
있다(郭璞).
는 其大若垂天之雲하니
(注 16)
此能爲大
[역주 16]此能爲大
이것은 크기만 할 뿐임. 爲大는 크다는 뜻. 爲大를
‘大를 爲한다’, ‘큰 일을 한다’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
있으나 취하지 않는다.
矣로대 而
(注 17)
不能執鼠
[역주 17]不能執鼠
쥐 한 마리를 잡을 수 없음. 작은 일, 세속적인 일에
쓸모없음[無用]을 나타낸 말. 朴世堂은 이 斄牛의
不能執鼠를 덫에 걸리고 그물에 걸려 죽는 살쾡이의
小知와 대비되는 大知에 비유하여 “저 大知는
비유하건대 斄牛가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것과
같다. 이 소는 작은 일 하는 데는 短點이 있어
쓸모없는 것 같지만, 그 쓸모없음 때문에 生을 온전히
하고 害를 멀리하여 마침내 逍遙의 즐거움을 얻고
세속의 累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[夫大知
譬如斄牛之不能執鼠 是其短於爲小 似乎無用
然其無用者 乃所以全生遠害 適得逍遙之樂
而不受世俗之累也].”라고 하였다. 또 福永光司도 “세속
사람들의 눈은 固定化되고 習慣化된 旣成의
價値體系에 못박혀 모든 存在의 자유로운 가치와
참다운 有用性을 못 보고 만다. 莊子는 이같은 세속
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自由의 價値와 참다운 有用性을
그들이 쓸모없다고 하는 것 속에서 찾아낸다.”고
하였다.
하나니라 今子有大樹호대 患其無用이어든
(注 18)
何不
[역주 18]何不
어찌하여…하지 아니하는가. 그러나 영어의 Why don't
you 와 같은 용법으로 이해하여 ‘…하는 것이 어떠한가’,
‘…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’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
경우도 있다.
樹之於
(注 19)
無何有之鄕廣莫之野
[역주 19]無何有之鄕廣莫之野
아무것도 없는 虛無의 고을, 끝없이 펼쳐진
廣遠莫大한 들판. 《장자》 전편을 통해 遊라는 글자를
자주 대하게 되는데 이 遊는 장자 사상 가운데 중요한
思想槪念이다. 그것은 人爲의 세계의 작은 有用性을
넘어선, 목적의식이 없는 無爲自然의 遊인데 이 遊의
마당이 바로 無何有之鄕이자 廣莫之野이다.
하고
(注 20)
彷徨乎無爲其側
[역주 20]彷徨乎無爲其側
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냄.
成玄英은 ‘彷徨은 縱任을 일컬음[彷徨 縱任之名]’이라고
풀이하여, 彷徨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自由放任의
행위로 보았고, 陸德明은 “방황은 이리저리
날아다님이다[彷徨 猶翶翔也].”라고 풀이했다. 彷徨과
뒤에 이어지는 逍遙를 竝記하고 있는 예는
〈大宗師〉편, 〈達生〉편, 《楚辭》 〈遠遊〉편, 《淮南子》
〈原道訓〉‧〈俶眞訓〉‧〈精神訓〉‧〈修務訓〉의 諸篇,
《韓詩外傳》5, 《說苑》 〈建本〉편, 《文子》 〈九守〉편
등이 있다(池田知久).
하며
(注 21)
逍遙乎寢臥其下
[역주 21]逍遙乎寢臥其下
그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잠을 잠. 成玄英은
‘逍遙는 자득을 일컬음[逍遙 自得之稱]’이라고 풀이하여,
逍遙를 悠悠自適하는 것으로 보았다. 逍遙는 道家의
遊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用語 중의 하나이다.
明 方以智가 저술한 《通雅》에 따르면 逍遙는
옛날에는 消搖, 捎搖, 須臾 등으로 썼다고 했으며
毘曇의 말을 인용하여 하루의 30 분의 1, 곧 48 분이
수유[逍遙 古作消搖捎搖 又爲須臾……毘曇云
一晝夜共三十須臾 - 《通雅》 卷六 〈釋詁〉]라고 밝히고
있다. 따라서 逍遙는 대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대상을
떠나지도 않으면서 48 분의 거리를 두고 대상과 함께
悠悠自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.

(注 22)
不夭斤斧
[역주 22]不夭斤斧
도끼에 잘릴 염려가 없음. 夭는 夭折하다의 뜻. 斤斧는
작은 도끼와 큰 도끼. 두 글자를 합쳐 도끼의 뜻으로
쓰였다. 不夭斤斧는 朴世堂이 풀이한 ‘全生遠害’의
全生(生을 온전히 함)에 해당한다.
하며
(注 23)
物無害者
[역주 23]物無害者
그 무엇도 그를 해치는 자가 없음. 朴世堂이 풀이한
‘全生遠害’의 遠害(害를 멀리함)에 해당하는 표현.
莊子的 ‘無用之用’, ‘無用之大用’의 用이 養生에 있음을
주목하게 하는 문구이다.
하리니 無所可用이어니와 安所困苦哉리오

장자가 이에 대해 말하였다.

“그대도 살쾡이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. 몸을 바짝 낮추고 엎드려서 나와


노는 작은 짐승들을 노리고 또 먹이를 찾아 東으로 西로 이리 뛰고 저리
뛰면서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는다. 그러다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
그물에 걸려 죽기도 한다. 그런데 지금 저 斄牛는 그 크기가 하늘에
드리운 구름과 같으니 이 소는 크기는 하지만 쥐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.
이제 그대에게 큰 나무가 있으면서도 그 나무의 쓸모없음이 걱정이 된다면
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虛無의 고을, 끝없이 펼쳐진 廣遠莫大한 들판에
심어 놓고 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고 그
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낮잠이라도 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. 〈이 큰
나무는〉 도끼에 잘릴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칠 자가 없을 것이니 세속적인
쓸모가 없긴 하지만 괴롭게 여길 것 하나도 없다.”

역주
역주 1 樗(저) : 가죽나무. 成玄英은 “樗는 북나무, 옻나무 종류이다. 나무의 냄새를

맡으면 몹시 악취가 나는 惡木이다[樗栲漆之類 嗅之甚臭 惡木者也].”라고 풀이했다.


재목으로 쓸모가 없는 나무라는 뜻이다.

역주 2 大本 : 큰 줄기. 本은 뿌리라는 뜻이지만 林希逸이 “大本은 나무의

몸체이다[大本은 樹之身也].”라고 풀이한 것처럼 줄기로 보는 것이 맥락상 적절하다.

역주 3 擁腫 : 나무에 울퉁불퉁한 혹이 많은 것. 擁(옹)은 癕의 借字. 奚侗은 “擁자는

마땅히 癕으로 되어야 한다[擁當作 癕].”고 하고 있다. 그러나 글자를 고치지 않고도
울퉁불퉁하게 혹이 많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경우를 〈庚桑楚〉편에서 老子의 道를
두루 다 체득한 庚桑楚라는 사람이 몸에 혹 투성이의 험상궂은 사람과 함께 산다는
뜻으로 ‘擁腫之與居’라 한 데서 찾을 수 있다.

역주 4 不中繩墨 : 승묵에 맞지 않음. 먹줄을 칠 수 없다는 뜻. 繩墨은 직선을 긋기

위한 먹줄.

역주 5 卷曲 : 비비 꼬이고 구부러짐. 成玄英은 ‘똑바르지 않음[不端直也]’이라고

풀이했고, 육덕명은 “卷을 拳으로 쓰고 있는 판본도 있다[本又作拳].”고 하였다.

역주 6 不中規矩 : 規矩에 맞지 않음. 規는 圓을 만드는 도구, 矩는 네모꼴을 만드는

도구. 동그라미나 네모꼴을 그릴 수가 없다는 뜻.

역주 7 立之塗 : 길 옆에 서 있음. 朴世堂은 “이 나무가 길 옆에 가까이 서

있다[近於道傍也].”고 풀이했다.

역주 8 衆所同去也 : 모두 똑같이 이 나무를 보지 않고 떠나가 버림. 朴世堂은 去를

棄로 풀이했다. 앞의 大瓠와 여기서의 樗木을 두고 실용적 쓸모가 없다고 惠施가


비판한 것은 世俗을 초월한 莊子의 大言이 쓸모없음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. 이
비판에 대해 莊子는 ‘쓸모없음의 큰 쓸모[無用之用]’로 답한다.

역주 9 子獨不見狸狌乎 : 그대만이 홀로 살쾡이를 보지 못하였는가. 狸狌(이성)을

너구리[狸]와 살쾡이[狌]의 둘로 나누어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, 여기서는 成玄英이


狸狌을 野猫라고 풀이한 견해를 따라 二字一語로 보고 살쾡이로 번역하였다.

역주 10 候敖者 : 나와 노는 작은 짐승들을 노림. 候는 朴世堂이 ‘엿보다[候伺也]’로

풀이한 견해를 따랐다. 敖者는 《說文解字》에서 游로 풀이한 것에 의거하여, 나와


노는 짐승들로 해석하였다. 司馬彪는 “나와 노는 짐승들을 노렸다가 잡아먹음을
말함이니 닭이나 쥐의 무리이다[謂伺遨翔之物而食之 雞鼠之屬也].”라고 풀이했다.

역주 11 東西跳梁 : 역시 먹이를 찾아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뜀.

역주 12 不辟(피)高下 : 높고 낮은 데를 피하지 않음. 곧 높은 곳 낮은 곳을 가리지

않고 날뛴다는 뜻. 辟는 避와 같다.

역주 13 中於機辟(벽) : 機辟에 걸림. 中은 맞다, 걸리다의 뜻. 機辟은 덫. 王念孫은

辟을 繴(벽: 덫이 설치되어 있는 그물)의 뜻으로 풀이했고, 郭慶藩도 繴의 假借字로


보았다. 司馬彪는 機辟을 그물[罔]로 풀이했고, 成玄英은 ‘機關之類’로 풀이했다.
역주 14 罔罟 : 그물. 罔은 網과 같다. 罟도 역시 그물. 二字一語.

역주 15 斄(리)牛 : 털이 검고 꼬리가 긴 소. 티벳 高原産의 소의 일종이라

한다(池田知久). 斄를 來(래)로 읽는 說도 있다(郭璞).

역주 16 此能爲大 : 이것은 크기만 할 뿐임. 爲大는 크다는 뜻. 爲大를 ‘大를 爲한다’,

‘큰 일을 한다’는 뜻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취하지 않는다.

역주 17 不能執鼠 : 쥐 한 마리를 잡을 수 없음. 작은 일, 세속적인 일에

쓸모없음[無用]을 나타낸 말. 朴世堂은 이 斄牛의 不能執鼠를 덫에 걸리고 그물에


걸려 죽는 살쾡이의 小知와 대비되는 大知에 비유하여 “저 大知는 비유하건대 斄牛가
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것과 같다. 이 소는 작은 일 하는 데는 短點이 있어
쓸모없는 것 같지만, 그 쓸모없음 때문에 生을 온전히 하고 害를 멀리하여 마침내
逍遙의 즐거움을 얻고 세속의 累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[夫大知
譬如斄牛之不能執鼠 是其短於爲小 似乎無用 然其無用者 乃所以全生遠害 適得逍遙之樂
而不受世俗之累也].”라고 하였다. 또 福永光司도 “세속 사람들의 눈은 固定化되고
習慣化된 旣成의 價値體系에 못박혀 모든 存在의 자유로운 가치와 참다운 有用性을
못 보고 만다. 莊子는 이같은 세속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自由의 價値와 참다운
有用性을 그들이 쓸모없다고 하는 것 속에서 찾아낸다.”고 하였다.

역주 18 何不 : 어찌하여…하지 아니하는가. 그러나 영어의 Why don't you 와 같은

용법으로 이해하여 ‘…하는 것이 어떠한가’, ‘…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’로 해석하는


것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다.

역주 19 無何有之鄕廣莫之野 : 아무것도 없는 虛無의 고을, 끝없이 펼쳐진 廣遠莫大한

들판. 《장자》 전편을 통해 遊라는 글자를 자주 대하게 되는데 이 遊는 장자 사상


가운데 중요한 思想槪念이다. 그것은 人爲의 세계의 작은 有用性을 넘어선,
목적의식이 없는 無爲自然의 遊인데 이 遊의 마당이 바로 無何有之鄕이자
廣莫之野이다.

역주 20 彷徨乎無爲其側 : 그 옆에서 자유롭게 거닐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냄.

成玄英은 ‘彷徨은 縱任을 일컬음[彷徨 縱任之名]’이라고 풀이하여, 彷徨을 마음 내키는


대로 하는 自由放任의 행위로 보았고, 陸德明은 “방황은 이리저리 날아다님이다[彷徨
猶翶翔也].”라고 풀이했다. 彷徨과 뒤에 이어지는 逍遙를 竝記하고 있는 예는
〈大宗師〉편, 〈達生〉편, 《楚辭》 〈遠遊〉편, 《淮南子》
〈原道訓〉‧〈俶眞訓〉‧〈精神訓〉‧〈修務訓〉의 諸篇, 《韓詩外傳》5, 《說苑》 〈建本〉편, 《文子》
〈九守〉편 등이 있다(池田知久).
역주 21 逍遙乎寢臥其下 : 그 아래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잠을 잠. 成玄英은 ‘逍遙는

자득을 일컬음[逍遙 自得之稱]’이라고 풀이하여, 逍遙를 悠悠自適하는 것으로 보았다.


逍遙는 道家의 遊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用語 중의 하나이다. 明 方以智가
저술한 《通雅》에 따르면 逍遙는 옛날에는 消搖, 捎搖, 須臾 등으로 썼다고 했으며
毘曇의 말을 인용하여 하루의 30 분의 1, 곧 48 분이 수유[逍遙 古作消搖捎搖
又爲須臾……毘曇云 一晝夜共三十須臾 - 《通雅》 卷六 〈釋詁〉]라고 밝히고 있다.
따라서 逍遙는 대상에 집착하지도 않고 대상을 떠나지도 않으면서 48 분의 거리를
두고 대상과 함께 悠悠自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.

역주 22 不夭斤斧 : 도끼에 잘릴 염려가 없음. 夭는 夭折하다의 뜻. 斤斧는 작은

도끼와 큰 도끼. 두 글자를 합쳐 도끼의 뜻으로 쓰였다. 不夭斤斧는 朴世堂이 풀이한


‘全生遠害’의 全生(生을 온전히 함)에 해당한다.

역주 23 物無害者 : 그 무엇도 그를 해치는 자가 없음. 朴世堂이 풀이한 ‘全生遠害’의

遠害(害를 멀리함)에 해당하는 표현. 莊子的 ‘無用之用’, ‘無用之大用’의 用이 養生에


있음을 주목하게 하는 문구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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